한줄 요약
외주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기획의 구조적 부재다.
본문
왜 외주 프로젝트는 기획 단계에서 이미 기울어지는가?
에이전시 입장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받아보면 패턴이 보인다. 클라이언트는 이미 결론을 들고 온다. "이런 앱을 만들고 싶다"는 비전은 있지만, 그 비전이 구조화된 문서로 정리된 경우는 드물다. 예산은 빠듯하고 일정은 촉박하니 기획에 별도의 시간을 쓰는 것 자체를 낭비로 여긴다. 그 결과 에이전시는 클라이언트가 막연하게 정해온 방향 위에서 화면을 설계하고 개발 산출물을 찍어내는 역할로 좁아진다.
문제는 이 구조가 반복적으로 같은 실패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중간에 방향이 뒤집히거나, 일정이 끝없이 늘어나거나,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 채 프로젝트가 조용히 소멸한다. 이건 특정 클라이언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규모나 업종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구조적 실패다.
범용 AI 도구로 기획을 때우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ChatGPT로 기획서 뽑으면 되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클라이언트에게 종종 듣는다. 실제로 써보면 처음엔 꽤 그럴듯하다. 회원가입, 기능 목록, 플로우 설명까지 그럴싸하게 나온다. 하지만 실무에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느냐고 물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획의 핵심은 기능 나열이 아니라 기능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고 그 관계의 모순을 검증하는 일이다. 회원가입 로직이 바뀌면 권한 체계가 달라지고, 권한 체계가 달라지면 피드에 노출되는 콘텐츠 범위도 달라진다. 범용 LLM은 대화가 길어질수록 앞서 정의한 맥락을 잃어버리고, 기능 A와 기능 B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결국 에이전시 실무자가 AI 출력물을 다시 엑셀에 옮기고, 별도 툴에서 흐름도를 그리고, PPT로 재정리하는 작업이 추가된다. AI를 써서 일이 줄어든 게 아니라 한 단계가 더 생긴 셈이다.